왜 나는 폰지사기를 의심하지 못했을까

직장에 처음 취업했을 때였다.
사회생활도, 경제도 아직 잘 모르던 시기였다.
그때 고등학교 동창 한 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이미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사회초년생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이야기라며
보험 얘기를 꺼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였고,
나보다 먼저 취업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연락은
특별히 경계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투자’가 아니라 ‘조언’처럼 느껴졌다

처음부터 투자 이야기가 나온 건 아니었다.
보험, 보장, 사회초년생이 준비해야 할 것들 같은
아주 익숙한 이야기들이 먼저였다.

그 흐름 속에서
투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섞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판단을 시작했어야 했지만,
당시의 나는 이걸
투자 제안이라기보다 조언에 가까운 말로 받아들였다.


내가 의심하지 못했던 진짜 이유

돌이켜보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믿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보다 더 오래 사회생활을 했고,
금융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저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는데
설마 문제가 있겠어?

그 친구는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본인 역시
다른 지인들을 통해 이 투자를 접했고,
충분히 설명을 듣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을 직접 판단해야 할 문제라기보다
이미 누군가가 판단을 끝낸 사안처럼 받아들였다.


질문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맡겼다

나는 질문을 못 한 게 아니었다.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 이미 누군가가 구조를 이해한 것 같았고
  • 이미 위험을 검토한 것처럼 보였고
  •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질문을 포기한 게 아니라
판단을 위임한 상태였다.

그 판단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확신 위에 올라가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여러 명이 하고 있다’는 말이 주는 안도감

그 친구 한 명만 믿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른 고등학교 동창들 역시
같은 경로로 이 투자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사실은
나를 더 안심시켰다.

다들 같은 설명을 듣고,
다들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내가 굳이 더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보면
이건 판단이 아니라
집단 안에서의 안도에 가까웠다.


회사 이름이 주는 착각

그 친구가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나를 안심시키는 요소였다.

금융회사, 제도권, 명함.
이 단어들이
그 사람이 하는 말 전체에
신뢰를 덧씌워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됐다.

회사 소속과
개인이 전달하는 투자 판단의 정확성은
전혀 다른 문제
라는 걸.


그래서 나는 끝까지 의심하지 못했다

이 모든 조건이 겹치면서
나는 의심을 미룬 게 아니라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린 상태가 됐다.

  • 누군가는 이미 검토했을 것 같았고
  • 누군가는 이미 판단했을 것 같았고
  • 나는 그 결론을 참고한 사람에 가까웠다

지금 돌아보면
이게 바로
내가 의심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이 글을 남기는 이유

이 글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다만
판단을 대신해 줄 것처럼 보이는 확신이
얼마나 쉽게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만드는지
,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과거의 나처럼
“저 정도로 믿고 있다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판단을 넘겨버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경험이 작은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다음 글 예고

👉 다음 글에서는
고수익 보장이라는 말에
왜 그렇게 쉽게 흔들렸는지
,
그때의 심리와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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